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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과 스트라스부르그

스트라스부르그 하면 우리에게 가장 먼저 다가오는 것은 쁘띠프랑스다.
그러나 개혁교회에 있어 이 스트라스부르그는 매우 의미가 있는 곳이다.
종교개혁을 주도 했던 칼빈은 제니바에서 추방을 당하고 바젤로 간다. 바젤에 머물러 있던 칼빈은 당시 프랑스 개혁신자들의 피난처였던 스트라스부르그로부터 교구담당목사로 청빙을 받는다. 그리 탐탁치 않았던 칼빈에게 마틴 부처는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가 있을 것이라는 경고를 한다. 이 말에 칼빈은 “요나처럼 나는 가르치는 일을 계속하게 되었다”고 말하며 징집된 그리스도의 군사처럼 스트라스부르그로 간다.

칼빈은 스트라스부르그에서 3년의 사역을 지속한다. 그는 시간이 지나고 이 시기를 황금시기로 회상한다. 성경을 연구하고 기도하며 일주일에 한번 장로와 집사들을 만나 가르치고 한 주간에 4번이상의 설교를 했다. 그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스트라스부르에서의 사역은 열악했다. 청빈된지 1년이 지난 후에야 사례를 받을 수 있었으며, 그동안 그는 제네바에 두고 온 책들을 팔아 생활비를 충당했다. 많은 사람들이 재정적인 후원을 제시했지만 그는 그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은 거절한다.
그때 그는 이런 말을 한다. “제가 제네바에 남기고 온 책들을 팔면 다음 겨울까지는 제 집세를 내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후에는 주님께서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그는 스트라스부르그에서 건강의 악화와 경제적인 궁핍의 문제로 시달렸다. 그를 본 동료들은 결혼을 권유를 했지만 그에게 결혼은 관심 밖의 문제였다. 그러던 중 칼빈은 사별한 남편으로부터 두 아이를 낳았고, 따로 입양한 아이가 4명이 더 있는 이들레뜨 드 뷔르를 아내로 맞아 가정을 이룬다. 그녀는 칼빈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칼빈의 배우자로 훌륭한 성품을 가진 여인이었다. 칼빈은 그의 아내가 죽고 15년을 독신으로 살다가 생을 마감한다.

스트라스부르그, 칼빈의 삶에 이곳은 3년의 시간이지만 그의 인생에 가장 큰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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